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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걸

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참여한 박원걸

박원걸은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7세에서 16세까지 고향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21세때 하와이에 노동이민을 왔다. 1909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고 국민회에 가입, 초창기 임원으로 국민회 기반을 닦는데 노력했다. 노동을 위해 다시 로스앤젤리스로 와서 살았다. 1919년 3.1만세운동 후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박원걸은 독립의연금 54달러를 냈다. 1932년 12월에는 흥사단에 가입을 했다. 단우번호는 273번. 송종익 등과 함께 흥사단에 열심이었다. 일본의 하와이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독립금 모금위원 13명을 선출했는데 그는 국민회 대표로 뽑혔다. 대한인국민회를 위해서 평생 나선 일꾼이었다. 노후에는 흥사단 재무원으로 단우 친목과 단결을 위해서 노력했다.

성명 : 박원걸
훈격(연도) : 애국장(2011)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황해도 평산
생존기간 : 1884 ~ 미상

1905년 하와이로 왔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재무,서기,부회장 등을 맡아 한인사회의 단결을 위해 노력했다. 1918년 6월 미 본토로 온 그는 1919년 7월 로스앤젤리스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재무서기 대리, 1927년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리스 지방회 법무,회장 등을 역임했다. 1930년에는 국내 학생운동 지원을 위한 후원금을 기부했고,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 중앙감찰위원을 거쳐 1944년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뿐만 아니라 1919년경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