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특무공작 지원,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역임한 임성우
성명 : 임성우
훈격(연도) : 독립장(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서울
생존기간 : 1889. 2. 5 ~ 1970. 7월
서울 사람이다. 1914년 6월 하와이에서 박용만이 설립한 국민군단의 훈련대 소대 참위로 활동했다. 그리고 오운, 최선주, 이보국 등과 함께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제1세 동포와 미주에서 출생한 제2세 동포간의 상업과 사교를 장려하기 위한 조미구락부를 조직했다.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지역 특성상 교민사회의 자치 및 단합을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대한 독립외교활동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 여건 속에서 1930년 하와이 사회풍파의 시비가 각 방면에 파급되어 임시정부에 대한 재정 후원이 미약했지만, 임성우는 와이아와 지역의 동지들과 파쟁에 중립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1931년 9월 김구가 계획하고 있던 특무공작에 찬성하고 같은 해 11월 15일에 1천달러를 송금했다. 그런데 이 독립자금은 이봉창, 윤봉길 등의 거사비용으로 쓰여졌다. 그후 1932년 2월 이러한 그들의 비밀결사가 알려지면서 애국단이 조직되었는데, 임성우는 초대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35년 1월에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의 총회장에 선임되어 분열된 한인사회의 재결속을 위해 힘을 쏟았다.그는 이어 1938년 혈성금 재무, 1940년 5월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하와이 한국독립당지부를 이끌어 가며, 임시정부의 특무공작과 한국광복군 편성에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941년 4월 해외한족대회에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대표로 참석,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가 연합하여 조직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7년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