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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정신과 나라사랑 마음을 배웠으면” 독립유공자 송헌주 증외손자 마크 김 판사 인터뷰

p10-1-img_0526“독립유공자들을 나라를 찾는데 나서면서 가정에는 큰 희생(Sacrifice)이 따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일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송헌주 독립유공자의 증외손자인 마크 김 판사는 어려움 중에서도 애국일념으로 사신 외할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1915년 프린스턴대학원을 졸업하시고, 평생을 편안하게 사실 수가 있었을 텐데 외할아버지는 국권회복운동이라는 희생의 길을 걸어오셨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LA시 검사를 거쳐 약관 38세인 1998년에 주지사로부터 판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때 신문마다 「한인 판사 탄생」이라고 대서특필했고 그 주인공이 바로 마크 김 판사이다. 한인 판사가 없었을 시절이다. 산타바바라에서 태어났고, UC Berkerly와 Cornell대학을 졸업했다. 처음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다가 아버지 김동국 회장의 뜻에 따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리고 검사로 있으면서 1992년 4.29폭동을 목격했고, 한인사회가 정치적으로 더욱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판사의 길을 선택했고 올해가 18년째이다.

 

마크 김 판사는 요즈음 많이 바쁘다. 후배 판사나 한인사회 젊은이를 위한 Mento가 되어서 그들을 밀어주고 이끌어 주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는 늘 “성공하거든 커뮤니티를 위해서 그 보답을 해라. 그리고 후배들을 잊지마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한 “한인 부모들은 위대하다.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녀교육에 헌신적이셨다. 부모세대를 적극 이해하면서 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를 한다.p10-2-img_0530

 

마크 김 판사는 대한인국민회를 사랑한다. 그리고 아버지 김동국 회장과 함께 주요 행사 때마다 국민회 기념관을 찾는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관 건축위원장이셨던 외증조할아버지의 독립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국민회 기념관을 찾아서 나라사랑과 희생하는 마음을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인2세인 마크 김이 판사의 길을 걸은지 18년이 지난 오늘, 미국 법조계에 한인들의 Power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미전국에 22명의 한인판사와 150명의 한인검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4.29폭동 때에는 한인사회가 정치적으로 힘이 없어서 피해를 많이 보았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를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한인사회와 후배 젊은이들을 위해서 희생의 정신으로 사는 마크 김 판사. 언제나 겸손하면서 친근감을 주는 모습에서 송헌주 애국지사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