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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환

파리에서 임시정부 지원하는 외교업무 맡은 황기환

황기환성명 : 황기환
훈격(연도) : 애국장(1995)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평안남도 순천
생존기간 : 미상 ~ 1923년

평안남도 순천 사람이다. 미국에 유학와서 공부하던 중, 미국이 세계 제1차대전에 참전함에 따라 자원 입대하여 제1차대전에 출전했다. 그 후 1919년 6월 프랑스로 귀환한 그는 이승만이 설립한 구미주차한국위원회의 원동지역 대표 김규식이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개최되는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로 오자, 김복 등과 함께 대표 단의 사무를 협조하는 동시에 김규식의 서기장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독립 선전활동에 종사했다. 1920년 1월 프랑스 파리에 주재하는 한국선전단 선전국장으로 불어잡지를 창간하여 한국의 독립을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 했다. 한편, 파리대학 교수인 우락을 초청하여 인권옹호회를 조직하고 지리학회장에서 「원동 한중 화평이 수(受)하는 압박」이란 문제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언론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황기환은 10월 영국 런던에서 멕켄시와 윌리암스가 발기하여 한국친구회를 조직하자, 참석하여 활동했다.1921년 4월 상해 임시정부 외무부 주차영국런던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영일동맹과 한국』이란 서적을 편집하여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것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판했다. 또한 5월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신부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친우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외교사업을 후원하는 한편, 7월 임시정부 외교부 런던주재 외교위원 및 구미위원부에서 활약 하다가 1923년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