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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흥사단의 중심 인물 한시대

한시대한시대는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그리고 흥사단의 중심인물이었다. 중가주 딜라노에서 포도농사를 지어서 크게 성공했고, 독립운동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는 사업과 국권회복 운동에서도 항상 대담성을 보였다. 한시대는 1903년 부모와 함께 15살의 나이에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왔다. 호놀룰루 한인중앙학원을 졸업했다. 1913년에는 온 가족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후 멘티카지역에서 사탕무우를 재배했고, 다시 딜라노로 이주해서 포도농사를 지었다. 과일도매상, 정원 묘목 재배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흥사단에는 1917년 가입했다. 단우번호는 179번. 1930년대부터 대한인국민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인 박영숙과는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5남2녀를 두었다. 한시대는 1981년 93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현재 로즈데일 묘지에 묻혀 있다.

성명 : 한시대
훈격(연도) : 독립장(1995)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황해도 해주
생존기간 : 1888 ~ 1981. 5월
황해도 해주 사람이다. 1903년 유년시절 하와이로 이주하여 중학교를 마친 뒤 미 본토에 도착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농촌생활을 동경하여 1915년 캘리포니아주 맨티카지방에서 한인 60여명과 함께 1300에이커의 농지를 조차(組借)했다.그 중 150에이커의 땅에 사탕무우 농사를 시작한 뒤 딜라노에서 30여년간 노력하여 1950년 중반경 약 40만달러에 상당하는 한가기업회사를 설립하여 재미한인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는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연합국들이 파리강화회의를 개최하자 회의에 대표자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문제를 호소했다. 같은 해에 중국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여 송금하기도 했다. 그 후 1936년 분열된 북미지역 한인민족운동단체의 부흥을 위해 소집된 각 지방 대표자회의에 참석하여 북미 대한인국민회를 재건하고 미주 한인사회의 부흥과 항일운동, 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을 담당했다. 이때 한시대는 대한인국민회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추진된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위원으로 선정되어 1938년 4월 총회관을 낙성하는데 헌신했다. 또한 미주에서 애국단의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것을 기회로 항일무장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미주 등지에서 산재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등 6개 단체와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陣線)을 결성하고 진강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서 활동하면서 8년간 적극적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했다. 중일간의 전쟁이 고조되던 이듬해인 1940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임원들과 상의하여 대한인국민회 명의로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제의했다. 이에 따라 1941년 4월 20일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 한족대회를 개최하자,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한 그는 부의장으로 선출되어 선언문과 해외한족대회결의안을 작성했다.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되고 로스앤젤리스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설치되자, 집행부 위원 및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및 선전사업을 추진하였다. 같은 해 12월 일본인과 동일시 취급되는 한국인의 신분을 보장받기 위해 뱃지 착용제를 실시하여 한인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1943년 9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하여 1944년 6월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고 활동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도 별도의 외교사무소를 개설하고 외교사무를 전개했다.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8월 외교위원부를 새롭게 개조할 것을 명령하자 그해 10월 로스앤젤리스에서 미국과 하와이의 17개 단체 중 동지회 계열의 4개 단체를 제외한 13개 한인단체가 대표회를 개최했다. 이때 한시대는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개조된 주미외교위원부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해 조국의 재건 후원을 목적으로 구성된 재미한족 국내파견대표단 단장으로 선임되어 고국을 떠나온 지 42년만에 조국의땅을 밟았으나 당시 해방정국의 혼란으로 인해 별다른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미국에서 예전부터 활동해 오던 흥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등 조국의 독립과 재건을 위해 일평생 헌신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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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의 가족. 어머니 문(한)성선과 부인 박영숙. 5남2녀를 두었다.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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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와 부인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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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가주 딜라노의 한시대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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