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주에서 김브라더스 경영하며 독립금 낸 한(김)덕세
한덕세와 남편 김형순은 부부 독립유공자이다. 그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했다.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했고 하와이 이민통역자로 다녀온 김형순과 1909년에 결혼했다. 한덕세는 남편과 1920년 중가주 농장지대 리들리로 이주했다. 여기서 이화학당 수학선생이었던 김호를 만나게 된다. 1921년 김호와 김형순은 동업으로 김브라더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과일을 수확하고 포장하고 로스앤젤리스에 도매하는 회사이다. 그리고 노동주선소를 함께 운영했다. 한덕세도 김브라더스의 동업자가 되었고 세사람이 경영을 했다. 1930년대는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과일회사가 바로 김브라더스회사였다. 한덕세는 메리와 루스의 두딸을 두었다. 그는 이승만 박사가 첫딸 메리와 결혼하기를 바랐으나 남편 김형순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명 : 한(김)덕세
훈격(연도) : 대통령표창(2014)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전라북도 무주
생존기간 : 1894.12.28 ~ 1977.5.5
1922년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 시사연구회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1944년 4월 대한여자애국단 중가주지부 단원으로 참여하고, 11월 재미한족전체대표회에 대한여자애국단 대표로 활동했다. 1921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