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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윤

가주국방경위대와 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한 최봉윤

최봉윤최봉윤은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공부를 하면서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가주국방경위대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UC Berkerly 교수로 평생 한인 이민역사와 독립운동사를 연구했다. 1938년 4월29일 샌페드로항에 유학생으로 도착했고 흥사단 단소에 짐을 풀고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리스 시립대학에 입학, 정치학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UC Berkerl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World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가주국방경위대(California State Guard)에 참여했다. 재미한인들이 미군과 함께 대일전쟁에 참가하여 연합국의 승전에 이바지함으로서 조국독립을 앞당기기 위함이었다. 1942년 4월26일에는 로스앤젤리스에서 그가참가한 맹호군의 인준식이 역사적으로 거행되었다. “초기이민사회는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이념이 뚜렸했다. 바로 광복과 반일투쟁이목표였다. 1919년 3.1만세후 미주에서 20만달러를 모금하여 대한인국민회와 상해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등 독립운동으로 모두 하나가 된 것이다.” 최봉윤 교수는 초기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헌을 높게 평가했다. “미국 땅에 도착한 그날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1903년부터 하와이에서 동회와 신민회를 조직하여 반일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조국독립과 애국애족정신을 고취했다는 것이다. 최봉윤 교수는 1979년 영문으로 Koreans in America(미국 속의 한국인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떠도는 영혼의 노래를 발간했다. 2005년 4월15일 향년 91세로 별세, 같은 해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성명 : 최봉윤
훈격(연도) : 애족장(1995)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평안북도 의주
생존기간 : 1914. 5.25 ~ 2005. 4.15

평안북도 의주 사람이다. 1930년 평양에서 학생으로 재학 중, 평양지역내 다섯 학교의 종교부를 통일하여 평양기독학생 종교부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성경학교와 수양회를 개최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맹퇴치운동과 민족정신 고취 활동을 전개했다. 1935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기독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일맥회라는 민족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시국간담회 등을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했으며, 최봉윤은 그 후 미국으로왔다. 1941년 2월 로스앤젤리스에서 변준호, 최능익 등이 결성한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에 회원으로 가입했고 조선혁명당 소장파들이 중국 한구에서 결성한 조선의용대의 중국군대 후방공작을 후원했다. 한편,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해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조직하자, 그가 소속한 조선의용대 미주 후원회역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42년 5월 중국에 있는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함에 따라 1943년 1월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가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9월 기관지 「독립」을 창간하자,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조선민족혁명당계열의 정치노선을 적극 후원 지지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봉윤이 펴낸 「Koreans in USA」등 주요 저서들.

최봉윤이 펴낸 「Koreans in USA」등 주요 저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