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조선독립단 단장으로 활동, 옥고 치른 조용하
성명 : 조용하
훈격(연도) : 독립장 (197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경기도 양주
생존기간 : 1882.3.3 ~ 1937.3.3
경기도 양주 사람이다. 1901년 대한제국의 주독, 주불 공사관 참사관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이천 군수 등을 지내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하여 항일활동을 했다. 1913년 도미하여 박용만과 같이 하와이에서 조선독립단(Korean Independence League)을 설립했으며, 1920년 7월 하와이 지방총회에서 지단장에 선출되어 기관지 “태평양시사”를 발행했다. 그는 또한 친동생인상해 임시정부 외무총장 조소앙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외교 및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조용하는 1932년 4월 조소앙으로부터 중한동맹회 조직의선언 및 입회용지의 송달을 받고 하와이 재류 동지를 권유하여 가입시켰다. 임시정부와 유대를 갖고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0월에는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하여 미국 기선프레지던트 후버호를 타고 상해로 가던 도중 일본 고베에 기항했다가 이 정보를 입수한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33년 1월 서울로 압송된 조용하는 1933년 4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너무나 검소하여 재미 20여년간 넥타이 한 개만을 사용했다고한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1937년 3월에 서거했다.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