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국민회 총회장으로 독립금 모은 조병요
성명 : 조병요
훈격(연도) : 독립장(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
생존기간 : 1881. 9.16 ~ 1961. 1.13
평안남도 평양 사람이다. 조병요는 성공회 교인들과 같이 1907년 9월 하와이에서 대한제국 부흥운동과 교육장려를 위해 전흥협회를 조직했다. 1908년 5월 회보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조직은 하와이 한인단체의 합동운동에 반대해 오다가, 결국 1910년 4월 대한인국민회에 병합되었다. 1921년 10월 하와이에서 분열된 단체를 통일하고 최고의 독립운동기관을 만들기 위하여 국민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기성회가 조직되었는데, 그는 하와이 대조선국민대표 기성회 총무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지역 특성상 교민사회의 자치 및 단합을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대한 독립외교활동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 여건 속에서 조병요는 1920년대 후반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임시정부가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의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 섰다. 1931년 11월 하와이 오아후 와이아와 지역의 동포들이 김구가 계획하고 있던 특무공작 자금을 지원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거사를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32년 2월 애국단이 조직되었다. 그런데 1934년 4월 조병요 등 12명이 애국단에 참가하면서 단의 조직이 더욱 확대되면서, 중국지역의 광복전선통일운동에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독립당이 결성되자 1940년 5월 애국단을 변경하여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를 설립했다. 1933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대회의 결의안에 의하여 교민단을 해체하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재건하고 미주와 하와이의 국민회와 보조를 같이하여 독립운동 후원사업을 전개했다. 미주지역 교민단체의 단합 분위기 속에서 1936년 조병요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국민부담금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회의 채무를 청산하였다. 또한 혈성금 제도를 실시하여 임시정부의 경상비를 조달하였고, 나이든 동포들을 위한 호상부제도를 실시하는등 단체를 획기적으로 부흥 발전시켰다.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서 민족통일운동과 독립운동 강화라는 중대 임무를 띤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되어 하와이 호놀룰루에 의사부, 로스앤젤리스에 집행부를 두었다. 1942년 3월 조병요는 의사부 위원 자격으로 워싱턴에 특파되어 미주 각지역 동포를 순방하는 한편 워싱턴 외교위원회를 방문, 하와이 동포의 전시중 정형에 대해 협의하고 돌아오는 등 교민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