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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부

한평생 대한인국민회 통해 독립운동을 한 전득부

전득부성명 : 전득부
훈격(연도) : 건국포장 (2012)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군
생존기간 : 1886.9.25 ~ 미상

전득부는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했다.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부회장, 스탁톤지방회 총무, 북미지방총회 구제원·실업부원, 로스앤젤리스지방회 집행위원, 딜라노지방회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07년 9월 안창호 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가입했다. 1908년 10월 독립군기지 개척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아시아실업주식회사를 설립했고 1908년 10월 샌프란시스코지방회 구제원, 12월에는 응접원으로 선임되었다. 1909년 2월 미주 한인의 통일기관으로 국민회가 창립되자, 북미지역은 북미지방총회로 편입되었다. 1909년부터 1924년까지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서 1909년 재무 · 평의원, 1911년 총무, 1914년 구한말 군인으로서 21세에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 1909년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전기인『양의사합뎐』을 발간할 때와 1911년『대동위인안중근전』을 간행할 때에 각각 출연금을 냈다. 1914년에 박용만이 하와이 오아후가할루 지방 아후마누 농장에서 대조선국민군단을 설재무, 1916년 총무, 1919년 독립의연금 수전위원, 1920년 재무, 1922년 실업부원, 1923년 부회장, 1924년 법무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북미지방총회에서도 1920년 구제원과 구미주차위원부 지방위원, 1921년 실업부원으로 활동했고, 1923년 5월 민립대학후원회 발기인이 되었다. 흥사단 단우로 입단번호는 119번이다. 1925년 3월 스탁톤지방회를 설립하고 1926~27년 총무와 스탁톤공제회 이사원이 되었으며, 1930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구제원으로 선임되었다. 1931~32년에는 국민회 총회 구제원·대의원으로 활동했다. 1932~33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재무도 겸했다. 1940년 로스앤젤리스지방회 집행위원 및 구제위원, 1941~43년 딜라노지방회 감찰위원·수전위원으로 활동했다.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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