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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택

임천택대한인국민회 통해 임시정부에 군자금 낸 임천택

독립유공자 임천택 (애국장)
성명 : 임천택
훈격(연도) : 애국장 (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경기도 광주
생존기간 : 1903. 3.19 ~ 1985. 9. 6

경기도 광주 사람이다. 1920년대 이래 큐바지역 한인사회 지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922년 큐바로 이주해서 대한인국민회 큐바지방회 서기로 활동했다. 큐바지방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1953년까지 동회의 총무, 회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한편 큐바지역 한인동포들의 민족교육을 위하여 1925년 민성국어학교를 세웠고, 임천택은 1952년까지 교사 및 교장으로 활약했다. 또한 청년학원을 세워 한인 청년들 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 섰다. 1920년대 말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정부가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는 편지를 받고 큐바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920년대 말 이후 광복 때까지 여러차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다. 임천택은 1938년 대한여자애국단 마딴사스지부 고문을 지냈으며, 1941년 4월 하와이 해외한족대회에서 결성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미주지방 의원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그는 1943년 재큐바한족단 마딴사스 지방회 대표로 동포의 권익보호 및 2세 교육, 청년지도자 양성 등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정부는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임천택은 1954년 큐바이민사를 펴냈다. 부인 김귀희는 대한여자애국단 마딴사스지부 단장을 지냈다. 임천택과 김귀희는 5남4녀를 두었고 맏아들 임은조는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동지로 민선시장과 인민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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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바 마딴사스 대한여자애국단을 창단한 김귀희와 남편 임천택이 태극 기를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1937년 7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