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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련 여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남편의 서훈 수십년 뒤에 겨우 평가되는 아내들의 독립운동
뒤늦은 서훈자 이혜련ㆍ정현숙ㆍ허은ㆍ이은숙을 기억하라

 

“오, 혜련! 나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혜련, 나를 얼마
나 기다립니까? 나는 당신을 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더욱 간절하옵니다. 내 얼굴에 주름은 조금씩
늘고 머리에 흰털은 날로 더 많아 집니다. (중간 줄임)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 보다 설움이 많았는가 합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
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
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중국 상해에서 미국에 남아있는 아내 이혜련(1884-1969) 지사
에게 보낸 편지글 가운데 일부다. 어제 12일(현지시각) 찾은 LA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미 연방
우정국 소속 ‘도산 안창호 우체국(3751 W. 6th St. LA)’ 에서 기자는 문득 남편 안창호 선생이 아내 이
혜련 지사에게 보냈던 위 편지글이 떠올랐다. (현재 ‘도산 안창호 우체국’은 한인들의 미주 이민 100
주년 기념으로 2004년 6월 연방하원의원 다이안 왓슨이 도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것으로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재건축 예정이라 코리아타운 내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
이지만 도산 선생 이름을 딴 우체국 이름은 그대로 따를 예정이다)

▲ LA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 내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하면 대한제국기의 교육개혁운동가,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로 알려졌지만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아내 이혜련 지사
(2008. 애족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이혜련 지사는 정신여학교를 나온 지식인으로 18살 되던 해인 1902년 9월 3일 도산과 혼인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36년간 결혼 생활 중 남편과 함께 지낸 시간은 13년 밖에 되지 않을 정
도로 이들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남편 안창호 선생은 미국과 중국, 러시
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아내 이혜련 지사는 5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며 미국에서 독립
운동의 최일선에서 뛰었다.

▲ 도산 안창호 선생, 아내 이혜련 지사와 4자녀, 막내아들 안필영(미국이름은 랄프 안)은 유복자로 태어나 이 사진에는 없다.

▲ 8월 11일, LA 가든스윗호텔에서 열린 73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93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인 도산 선생의 막내 아드님 안필영(미국이름 랄프 안)선생과 양인선 기자, 필자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이혜련 지사는 부인친애회를 조직하여 독립의연금 모금에 솔선수범하였
으며 북미주의 4개 지방 부인단체들이 연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활약했다.
이혜련 지사는 대한여자애국단을 중심으로 국민의무금, 21례, 국민회보조금, 특별의연 등의 모금을
주도하였고, 미국적십자사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한편, 독립운동가 오광선(1962, 독립장) 장군의 아내 정현숙(1995. 애족장) 지사도 만주에서 독립운
동에 뛰어든 여성이다. 정현숙 지사는 1935년까지 만주 길림 일대에서 독립군 뒷바라지와 미밀 연
락 업무를 맡았으며, 1935년 이후는 중국 남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일을 돕고, 1941년에는 한국
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여 활약하였다. 또한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뛰
었다.
남편 오광선 장군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와 1930년에 결성된 한국독립당 의
용군 중대장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서 지청천, 이범석 장군 등과
함께 교관으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광선, 정현숙 부부 독
립운동가는 오랜 시간 서로 떨어져 지내며 각각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 부부독립운동가 오광선 장군과 정현숙 지사

문제는 도산 선생의 아내 이혜련 지사처럼 오광선 장군 아내 정현숙 지사 역시 홀몸으로 자녀 양육
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으로 집을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홀로 아이들을 기르
며 본인 자신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 지난한 세월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정현숙 지사
가 남편과 떨어져서 갖은 고초를 당한 이야기는 정정화 (1990. 애족장) 지사의 《장강일기》에 고스란
히 남아 있다.

“토교에서 정씨(정현숙 지사)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 날이 없었고 백
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중
간 줄임) 영걸 어머니(정현숙 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영걸 어머니에게 정
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 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 어
머니는 만주에서 농사 경험도 있고 몸도 건강해서 내 밭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나는 그 대신 그 집
삼남매의 옷가지 손질이며 이부자리 등 주로 바느질일을 도왔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들의 독립운동은 늘 남성의 그늘에 치여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혜련 지사의 경
우도 남편인 안창호 선생이 1962년에 대한민국장을 받은데 견주어 46년이 지난 뒤인 2008년에서
야 애족장을 추서 받는데 그쳤다.
뿐만 아니라 정현숙 지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남편인 오광선 장군이 1962년에 독립장을 받은
데 견주어 아내인 정현숙 지사의 서훈은 33년이 지난 뒤인 1995년에서야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그것도 살아생전에 서훈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동안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뛰고도 그 공로를 인정 못 받은 수많은 여성들
이 다. 그나마 이번 8.15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게되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孫婦)이
자 이병화 지사의 아내인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1907-1997) 지사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
숙 (1889-1979) 지사 등은 그동안 외면당하다가 이제 이번 광복절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는
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공을 인정받아 기쁜 마음이다.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동상, 얼굴 모습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옆면, 뒷짐지고 책을 든 모습.

기자는 미주지역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미국 LA에 머물
고 있는 가운데 어제 12일(현지시각) 오후 2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 공원에 세워져 있
는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을 보고 왔다. LA에서 고속도로를 1시간여 달려야 갈 수 있는 리버사이
드를 찾은 것은 단순한 도산 선생의 동상을 보러 갔다기 보다는 아내 이혜련 지사와 함께 리버사이
드에서의 삶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안창호, 이혜련 지사의 리버사이드 시절은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주고 받는 돈으로 살아가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이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맏아들 필립이 태어났지만 가난한 생활은 끝나지 않
았다.
“내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치마 하나, 저고리 한 감 사 준 일이 없었고, 필립에게도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못 사주었다. 그러한 성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랬는데, 여간 죄스럽
지 않다.” 고 고백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올곧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애오라지 아내
이혜련 지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리버사이드에 있는 안창호 선생 동상은 ‘나홀로 모습’이었다. 뒷짐 진 손에는 책이 한권 들
려 있을 뿐이다. 십시일반으로 동포들이 세운 동상이지만 아내 이혜련 지사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세워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나아가 코리아타운에 있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 역
시 ‘안창호, 이혜련 우체국’이었으면 더 좋았을 법하다.
도산 선생의 아내인 이혜련 지사, 오광선 장군의 아내인 정현숙 지사,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
숙 지사, 이병화 선생의 아내인 허은 지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아내들은 늘 이렇게 어디에고 드
러나 있지 않다. 아니 드러내주지 않았다.
훈장을 주는 것도 남편들보다 항상 몇 십 년 뒤에 주고, 기록 또한 남편들 보다 적게 해 왔다. 연구
논문 수도 남편들보다 적고 이들을 기리는 일에도 소홀하다. 광복 73주년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와 리버사이드의 도산 안창호 선생 유적을 둘러보면서 기자는 당당했던 독립운동가 이혜련 지사도
남편 안창호 못지않게 기억되길 새삼 빌었다.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동상 앞에서 필자

그리고 올해부터라도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딱지를 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직 그러기
에는 이르다. 그 까닭은 2018년 8월 15일 현재, 남성 서훈자가 14,879명인데 견주어 여성 서훈자
는 고작 324명밖에 안되는 탓도 있지만 우리가 여성 서훈자 324명 가운데 유관순 열사 외에는 단 1
명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딱지를 달아야 할 것 같다. 더 기
억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신한국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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