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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전

일본 유학중 조선독립운동 벌여 옥고치른 이하전

이하전이하전은 독립운동을 한국과 일본에서 했다. 미국에 와서는 평생 대학교수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흥사단 정신으로 도산 안창호를 존경하며 살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광복회 회장으로 봉사를 했다. 이하전은 1941년 1월15일 일본 동경에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고향인 평양까지 압송당했고 2년6개월간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그의 죄명은 일본제국 타도와 조선독립운동이었다. 1945년 해방을 맞았고, 이해 10월 연희대학교에 입학해서 철학을 배웠다. 194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패사데나에서 공부하던중 6.25가 일어났고 몬트레이 미 육군 언어학교의 한국어과 교수가 되어서 평생동안 군인들을 가르쳤다. 흥사단에 1947년에 입단했고 단우번호는 316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선조의 희생정신을 본 받았으면 합니다.” 2015년 1월5일 인터뷰때 이하전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던지 조상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모두 5권의 저서를 펴냈다. 1998년 옥중기 「아담후예들의 나체군무」, 2003년 수필집「빛을 따라서」, 2006년 수필집「나그네 인생」, 2008년 수상집「들려온 소리들」, 그리고 2012년「오마니의 콧노래」이다. 1954년 결혼, 고인숙씨와의 사이에 아들 인철, 딸 인희를 두고 있다.

성명 : 이하전
훈격(연도) : 애족장(1990)
운동계열 : 학생운동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
생존기간 : 1921.11.26 ~ 생존

평안남도 평양 사람이다. 1936년 평양 숭인상업학교에 재학중 이광수가 지은 《흙》, 《조선의 현재와 장래》등을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정치·경제 등 제부문에서 자행되는 일본인의 차별대우와 억압에서 벗어나 조국독립을 쟁취할 것을 열망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1938년 10월 숭인상업학교 학생 오영빈, 김구섭 등과 함께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이들은 같은 해 12월 모임을 갖고 독서회를 축산계로 개칭했으며 이하전의 집이나 공원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월례회를 개최하고 실력양성과 독립정신 함양을 내용으로 오등의 서사라는 결의문을 작성하여 집회때 마다 암송하며 항일의식을 다져갔다. 그는 1939년 10월 중순 김구섭으로부터 안창호의 복사된 사진을 건네받고 그 위업을 기리며 비밀결사의 운동자금으로 사용할 8달러를 출원하였다.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 1월 동경시 소재 사립법정대학 예과에 재학하고 있으면서도 비밀결사 운동을 계속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이일로 인하여 1941년 12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수여하였다.

 

이하전 교수(왼쪽)와 장인환 평전 저자 문충한 회장(2003년)

이하전 교수(왼쪽)와 장인환 평전 저자 문충한 회장(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