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사 독립노선을 적극 후원한 이병억
성명 : 이병억
훈격(연도) : 애족장(1995)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경기도 수원
생존기간 : 1879. 8.23 ~ 1973. 1.24
경기도 수원 사람이다. 1903년 2월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왔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기숙사를 설치하여 한인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확보하는 한편, 한글, 영어, 수신, 산술 등을 교수하여 문맹퇴치운동과 자치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후 1906년 본토로 이주하여 임페리얼 밸리지역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1920년 로스앤젤리스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이승만 박사의 독립노선을 지지하며 1924년 9월 로스앤젤리스에서 안상학 등과 더불어 나성한인교민단을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워싱턴에 설치된 구미외교위원부에 송금하는 등 구미위원부의 외교활동 후원에 앞장 섰다. 그 후 1929년 이승만 박사가 로스앤젤리스 동지회를 결성하자 창립위원으로 선정되어 나성한인교민단을 해체하고 동지회를 조직하여 이승만 박사의 활동을 적극 후원했다.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이 통합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조직하자 동지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했다. 1943년 9월 이승만 계열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하자 함께 탈퇴하여 나성동지회를 동지회 북미총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했다. 그 후 1944년 6월에는 동지회가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여 활동하는 등 이승만 박사의 활동과 정치노선을 적극 후원했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