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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평생 독립운동을 도운 양주은

양주은양주은의 삶은 애국애족, 성실근면, 정직 그리고 봉사라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는 겨례사랑, 나라사랑의 모범을 보였다. 1910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상해 임시정부 재정지원, 광복군 후원, 미국내 애국지사를 돕는 일을 기쁨으로 했다. 그리고 초기 유학생들의 보살핌에도 특별했다. 양주은은 “나는 지도자로서 앞에 나서지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지도자들과 젊은 학생들을 뒤에서 도왔지요.”라고 생전에 말을 한적이 있다. 개성 인삼장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03년말 하와이 노동이민에 올랐다. 3년간 사탕수수농장에 일한 후 1906년 4월5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했다. 대지진이 나기 3일전이다. 조선의 팔도강산을 유람한 뒤 개성 인삼의해외시장 개척과 서양문물을 익히기 위해서 이민길에 오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쓸어져가는 나라를 보면서 통한의 마음으로 이민선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고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참여했고 1913년 도산 안창호의 흥사단 창단에 단우번호 6번으로 참여했다. 68년간을 도산의 흥사단 정신으로 살았다. “흥사단 창단은 미주에서 큰 뜻이 있었지요. 젊은이나 일반인을 위해 교육을 해오면서 교포사회를 하나되도록했고 나라사랑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지요. 도산 안창호는 미주 한인사회의 큰 빛이었지요. 하루를 살아도 내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었고, 언제나 실력있는 사람이 되자고 역설했다.”고 1978년 5월20일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인터뷰 때 저자에게 말했다. 양주은은 1908년 3월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친일 외교고문 듀함 스티븐스 저격을 현장에서 본 산 증인이다. 그는 당시 페리정거장에 나갔고 바로 그자리에 있었다. “동양인은 총을 살 수가 없어서 장인환은 같은 집에사는 백인의 총을 가지고 나왔고, 전명운은 가짜총이라고 하지만 진짜 총을 가지고 나왔다.”고 밝혔다. 양주은은 1923년부터 40년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Uncle Sam’s 식당을 경영했다. 그리고 수익의 일정액은 독립운동으로 냈다. 초기 유학생과 정치망명가들의 재정후원을 한결같이 했다. 양주은은 1918년 국민회 의무금으로부터 독립의연금, 광복군 후원금 등 여러 명목으로 1944년까지 쉬지않고 재정지원을 했다. 1936년 5월 임시정부 대표 이동녕, 이시영, 조성환, 김구, 송병조, 차이석은 재정지원에 감사하다는 내용과 앞으로 계속 후원을 해달라는 감사의 서신을 양주은에게 직접 보내왔다. 무엇보다도 평생 모은 신한민보와 대한인국민회, 공립협회, 대동보국회의 주요 자료를 1961년 한국을 방문 때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면서 미주 독립운동사 연구에 쓰라고 말했다. 양주은은 1913년 8월23일 진명학교 1회 졸업생인 이제현과 사진결혼 후 장녀 한미, 차녀 한숙을 두었다. 양주은은 1981년 8월30일 향년 10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샌프란시스코 사이프러스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성명 : 양주은
훈격(연도) : 애국장(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경기도 개성
생존기간 : 1879. 5.25 ~ 1981. 8.30

경기도 개성 사람이다. 대동보국회와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그리고 1940년대 초 맹호군 대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한인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동지들과 함께 1907년 대동보국회를 조직했다. 그는 대동보국회 새크라멘토 지역 대리회장, 회계, 평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1910년 5월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민회로 통합될때 이에 참가했다. 그리하여 1924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실업부원, 1932년 지방회 회장, 1936년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 실업부원 등으로 활동했다. 양주은은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임시정부의 재정부족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샌프란시스코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섰다. 또한 그는 1913년 흥사단이 창단될 때 창립 단원으로 참가하며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1년 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는 한인국방군 편성계획을 미육군사령부에 제출하고, 로스앤젤리스에 한인국방경위대로서 맹호군을 창설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계획을 중경의 임시정부에 알려 1942년 2월 정식 인준을 받아냈다. 그는 이러한 맹호군의 샌프란시스코 지대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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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은과 부인 이재현(왼쪽). 1923년부터 40년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Uncle Sam이라는 식당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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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군인으로 불리우기를 좋아했던 양주은. 1942년 5월 한인경비대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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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도산 안창호를 존경한 흥사단 단우 양주은.(1977년 9월25일)

양주은은 1978년 5월25일, 백세 생일잔치를 했다.

양주은은 1978년 5월25일, 백세 생일잔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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