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4촌동생으로 국민회에서 활동한 안영호
안교점은 어린 아들 안영호와 작고한 형님의 부인과 함께 1905년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왔다. 미국에 먼저와 있던 도산 안창호가 초청을 했다. 도산의 4촌동생인 안영호는 12살 나이에 하와이로 와서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15세부터는 재봉일을 배웠다. 다시 1915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김종림 등과 쌀 농사를 짖기도 했지만 홍수로 손해를 보았다. 트럭운전사로일을 했다. 조앤 김은 부산에서 온 김은해와 김자혜의 딸로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1923년 오크랜드에 이주했고 1925년 안영호와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이 참석을 했다. 도산 안창호가 설립한 대한인국민회에 가입을 했고, 평생 국민회를 통해서 독립운동 기금을 냈다. 안영호와 조앤 김이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에 살 때는 가끔 도산 안창호가 다녀가기도 했다. 안영호와 부인 조앤은평생을 오크랜드 한인감리
교회를 잘 섬겼다. 1975년별세했다.
성명 : 안영호
훈격(연도) : 건국포장 (2014)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평안남도 강서
생존기간 : 1895 ~ 미상
1937년 캘리포니아에서 대한인국민회 오크랜드 지방회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실업 부원과 선전위원 그리고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총무, 실업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수십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