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부인회 통해 독립운동에 나선 심(조)영신
심영신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1916년 하와이에 도착했다. 사탕수수 노동자로 먼저 와 있던 조문칠과 결혼을 한 후 마우이섬에서 일하다가 호놀룰루로 이주했다. 1913년 대한인부인회가 조직되었고 가입을 했다. 회장은 황마리아. 설립목적은 자녀의 국어교육과 일본상품 안쓰기, 사회단체와 교회를 돕는 일이었다. 1919년에는 대한부인구제회를 설립했고 이 단체에 참여했다. 심영신은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독립기금을 요청할 때에 1천달러를 냈다. 1941년 4월20일 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에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석했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는 의사부 위원이 되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에 나섰다. 호놀룰루한인연합감리교회 이동진 담임목사가 사위이다.
성명 : 심(조)영신
훈격(연도) : 애국장(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황해도 송화
생존기간 : 1882. 7.20 ~ 1975. 2.16
황해도 송화 사람이다. 미주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회를 결성하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913년 4월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황마리아 등과 함께 여성운동단체인 대한인부인회를 조직했다. 자녀의 국어교육 장려, 일제용품 구매 거부운동, 교회와 사회단체 후원, 재난동포 구제를 주요 행동지침으로 삼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운동을 지원하기위해 하와이 각지방의 부녀대표자를 소집하는 부녀공동대회의 개최에 앞장섰고, 같은 해 3월 이 대회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대한 후원을 결의했다. 또한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재정부족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의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모금에 앞장 섰다.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석, 새로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후원과 대미외교 및 선전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에 열심이었다.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