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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

상해 임시정부의 제1호 비행사 자격증 받은 박희성

박희성박희성은 3.1운동의 33인중 기독교 대표인 박희도의 동생이다. 형님의 뜻에 따라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1918년 미국에 왔다. 그러나 비행사 자격을 받던 날 돌풍으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끝내 그 꿈을 펴지 못했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병상에 있던 박희성은 1937년 1월15일 4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96년 황해도 출신인 박희성은 연희전문을 다닌 것으로 되어있으나 확인은 되지않고 있다. 위티어 소재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박희성은 2010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받고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해 11월15일 대전 국립묘지로 봉환되었다. 박희성의 친형으로 박희도의 외아들인 뉴욕에 거주하는 박승두씨가 남가주를 방문, 잊혀졌던 작은 아버지 박희성의 묘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박희도 여동생인 박(강)영복의 딸 헬렌 임을 로스앤젤리스에서 상봉했다.

성명 : 박희성
훈격(연도) : 건국포장(2010)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황해도 해주
생존기간 : 1896. 5. 2 ~ 1937. 1. 15

1920년 2월 20일 상해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과 김종림이 발기하여 캘리포니아 윌로스에 세운 한인비행사 양성소에 3월 입학해 1년여 동안 비행술을 배웠다. 1921년 3월 노다이 지방에서 열린 대운동회에서 시험비행을 하여 관람 군중으로부터 한인소년비행대장이라는 애칭을 받았다. 4월 10일 레드우드 시티 비행장에서 항공 면허 시험을 치르던 중 추락하는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나, 5월 22일 다시 시도해 세크라멘토 비행장에서 국제항공증서를 받게 되었다. 7월 1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회의에서 육군비행병 참위로 임명되었다.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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