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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데일의 여성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18명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18송이의 흰 국화꽃을 바치다

바람 한줄기, 구름 한 점 없는 8월의 태양은 강렬했
다.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자리한 로즈데일무덤에 도착했을 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놓인 느낌이었다. 8일(LA 현지시각) 낮 11시, 기자는 한국에서 함께 온 양인선
기자와 머나먼 이국땅 야자나무 아래서 잠들어 있는 18명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18송이의 흰 국화
꽃을 샀다.

▲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흐르는 날씨에 민병용 한인박물관장은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무덤을 찾은 기자 일행을 위해 기꺼이 안내를 해주었다. 손으로 가르키고 있는 것은 미국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독립운동가 한시대 지사 가족무덤이다.

이날 독립운동가들이 묻혀있는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한 사람은 민병용 한인박물관장이었다. 한국에
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민병용 관장은 “로즈데일무덤에 잠들어 있는 미주 독립유공자 14명”
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있는 전단 등 많은 자료를 손수 챙겨 보내오는 열의를 보였다.
로즈데일무덤을 참배하기에 앞서 기자 일행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민병용 관장의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이번 미국 방문 목적은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로 민병용 관장은 미
주지역에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26명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는 물론
LA지역에 눈이 어두운 기자를 위해 이날 손수 차를 운전하여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해 주었다.

▲ 양인선 기자와 필자는 이날 모두 18명의 독립유공자 무덤에 일일이 흰 국화꽃을 바치고 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사진은 강영문, 강영복(권영복) 부부 독립운동가 무덤이다.

▲ 강영문, 강영복(권영복) 부부 독립운동가 무덤에 바친 흰 국화꽃

“로즈데일무덤에 한인들이 묻히기 시작한 것은 1910년부터입니다. 이곳은 1884년 LA시에 처음 등
록된 무덤으로 미국의 남북전쟁 유공자들을 위해 조성된 무덤이지만 한인처럼 소수민족이 인종차
별 없이 묻힌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묻힌 한인들은 초기 이민자들로 모두 283명이 묻혀있습니
다.”
무덤 입구에 차를 세운 민 관장은 로즈데일무덤과 이곳에 한인들이 묻히기 시작한 내력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민 관장의 안내가 없었다면 65에이커(6만 5천 평)의 넓은 부지에 묻혀있는 한인들의
무덤을 한분 한분씩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기자가 흰 국화꽃을 바친 분들은 초기
한인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 한성선(애족장), 박영숙(건국포장), 이성례
(건국포장), 임성실(건국포장) 지사를 포함한 18명의 무덤이었다.

▲ 임치호, 임인재(차인재) 부부독립운동가 무덤 빗돌

초기 이민자로 백만장자의 꿈을 이뤘을 뿐 아니라 미주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한시대(1995, 독
립장) 지사와 어머니 한성선(애족장, 2015), 부인 박영숙(2017, 건국포장) 지사는 모두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분들이다. 이들의 무덤은 가장 찾기 쉬운 로즈데일무덤 입구의 가족묘에 안장되어 있
었다.
“현모양처 영숙(1892-1965)”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1888-1981)”

▲ 박영숙, 한시대 부부독립운동가 무덤

이는 한시대 지사와 부인의 무덤 묘지석에 새겨진 글귀다. 미국의 무덤은 한국과 같은 봉분을 쓰지
않는다. 다만 잡지책 크기의 묘지석을 두는데 이것도 세우지 않고 땅바닥에 납작하게 두는 게 특징
이다. 양인선 기자와 나는 흰 국화꽃 한 송이씩을 묘지석 위에 올려놓고 묵념을 했다.
한시대 지사는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그리고 흥사단의 중심인물이었다. 1903년 부
모와 함께 15살의 나이에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나와서 갖은 고생 끝에 1913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 뒤 멘티카에서 사탕무를 재배했고, 딜라노에서 포도농사를 시작으로 과일도매상, 정원
묘목 재배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나가면서 백만장자 대열에 우뚝 섰다. 그는 1930년대
부터 대한인국민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어렵게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
다.

▲ 부부독립운동가 한시대, 박영숙 지사는 5남 2녀를 두었다(1948), 둘째줄 3번째가 부인 박영숙, 어머니 문성성(한성선),한시대 지사(왼쪽부터)

한시대 지사의 어머니 문성선(한성선) 역시 1919년 3월 캘리포니아주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 대표
로 대한여자애국단을 세워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관여하였다. 또한 한성선 지사의 며느리이자 한시
대 지사의 부인인 박영숙도 신한부인회 서기를 시작으로 대한여자애국단 딜라노 지부 재무를 맡는
등 이들은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가족이다.
“로즈데일무덤에는 LA시를 건설한 입지전적인 미국인들이 많이 묻혀있어 미국쪽에서도 매우 중요
한 추모공간입니다. 한인회에서는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에서 2002년 가을부터 해마다
애국선열 추모의 날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에는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 LA총영
사 부임 때마다 참배와 헌화를 해오고 있지요.”

민병용 관장은 이날 참배 내내 로즈데일무덤에 묻힌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곳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한국 국립묘지”라고 했다. 안내자 없이는 독립운동가의 무덤을 찾기가 불가
능한 상황임을 알고 민 관장은 기자처럼 종종 로즈데일무덤을 찾아오는 한국인들을 위한 봉사를 평
생해오고 있다.
한편, 민 관장에 따르면 이곳에 잠들어 있던 김성권, 강혜원 부부 독립운동가가 2016년 11월 16일
고국의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제5-138) 으로 이장되었고, 임성실 지사도 2017년 11월
16일(애국지사묘역 제 5-234) 고국으로 유해가 봉환되는 등 로즈데일무덤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
기 시작했다고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이제 3세, 4세로이어지다 보니 김성권, 강혜원 독립운동
가처럼 고국으로 유해 봉환을 생각하는 가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선열들을
가까이에 모시고 싶어하는 가족이 대세인 듯하다.
조국 독립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헌신하다 숨진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로즈데일무덤 참배를 마치면
서 이들의 이름 석 자라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이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이야말로 8월의 뜨거운 태양보다도 더 절절히 끓고 있음을 느낀 하루였다.

[신한국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