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사업 성공후 꾸준히 독립기금을 낸 노신태
노신태는 1905년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민을 왔다. 1년 후인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고, 다시 새크라멘토로 가서 17년간 농장에서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다. 1923년에는 부산에 나가서 노정순을 맞아 결혼을하고 미국으로 초청을 했다. 그리고 오크랜드에서 이발사 자격증을 받고 이발소를 냈다. 점차 경제가 좋아지고 수익이 늘면서 독립기금을 꾸준히 냈다. 부인은 공중목욕탕을 경영했고 노신태는 호텔까지 샀다. 교회와 대한인국민회 일에만 열심이었다. 1942년 8월29일 대한인국민회 오크랜드지방회는 회관에서 현기식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노신태는 국치약사를 낭독했다. 이해 12월10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를 한 1주년 기념행사를 오크랜드지방회 회관에서 가졌다. 국민회 집행위원장 노신태는 선전포고 1주년 기념사를 했다. 1943년 12월12일 북가주 한인시국대회에서 조국광복을 원조하는 대한인국민회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는등 대일전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대한독립이 곧 올 것을믿었다. 노신태는 두아들과 딸 4명을 두었다. 아들 Gene Roh는 버클리 교육위원장으로 크게 활동을 했다.
성명 : 노신태
훈격(연도) : 애족장(2014)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미상
생존기간 : 1883 ~ 1963
1907년부터 1945년까지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 지방회회원, 대한인국민회 오크랜드 지방회 재무, 총무, 서기를지냈다. 그리고 오크랜드 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노신태와 부인 노정순 그리고 자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