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 3.1만세 후 망명, 동지회에서 활동한 김진목
성명 : 김진목
훈격(연도) : 애족장(1990)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충청북도 제천
생존기간 : 1899. 12.8 ~ 미상
충청북도 제천 사람이다. 경성공업전문학교 졸업반 때인 1919년에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식에 참가했다. 대한문까지 행군하다가 체포되어 종로경찰서로 연행, 심문을 당하고 2일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일본어 서적을 모두 태우고 졸업반임에도 불구하고 총독부 관립 학교라 하여 나가지 않았다. 또 김진목은 재학시 한국인 학생들로 구성된 경성공업전문학교 공우구락부에서 구입했던 등사기구를 계동 자택에 보관하고 독립신문 · 팜플렛 등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의 감시에 의해 가택 수색 끝에 체포되고 등사기구 일체를 압수당했다. 그러나 독립신문 발간은 증거 불충분이라 하여 체포된 지 2주일만에 석방되었다. 1921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과 같이 독립운동 대열에 적극 참여했다. 1923년 미국 로스앤젤리스를 거쳐 1927년 시카고의 루이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재미동포들과 교우하는 가운데 우남 이승만, 임병직 등과 뜻을 같이하고 대한인동지회(총재 이승만)에 가입 활동했다. 1932년 부터는 로스앤젤리스에서 일간지인 삼일신보를 발행하여 교포들에게 배포했다. 1942년에는 대한인동지회 로스앤젤리스 지방회장으로서 임병직 등과 외교활동을 했다. 그리고 미국 내의 유력한 인사들을 찾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하여 동분서주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