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혜

여성운동가로 일본상품 안쓰기운동에 앞장 김자혜

김자혜김자혜는 남편 김은해 그리고 7살짜리 딸 김조앤과 함께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했다. 처음에는 롬폭에 정착을 했고, 남편은 노동자로 일하다 다시 새크라멘토로 이주했다. 1924년 오크랜드로 옮겼다. 1919년에 창단한 대한여자애국단 지부단장을 맡았다. 이후 오크랜드한인교회에 등록했다.

여성운동가인 김자혜는 한인사회에서 상당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신한민보는 그의 독립자금 모금, 모임의 연설 및 대표기도 등에 자주 나섰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적의 간장을 먹지 마소라는 광고를 신한민보에 내면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초기한인사회에 보기드문 여성 활동가였다. 1919년 장인환 의사가 석방되었을 때 상항한인교회 이대위 목사 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1924년에는 대한여자저금회 회장을 맡아서 저축을 장려하고 한인사회의 경제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인전도회 회장으로도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1928년 이대위 목사 추도회의 추모기도를 드렸고, 한국 정신여학교에 기금을 모아서 보냈다. 1932년 3.1절 13주년을기념하는 대한인국민회 행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가 만일 독립을 원할진대 말로만 하지말고 매일 페니 한푼씩이라고 저축하여 독립자금을 모아놓아야 하겠다.” 김자혜의 독립의지는 빵에 버터를 발라먹지않는 것처럼 작은 실천을 항상 주창했다. 자기의 딸 조앤이 도산 안창호의 4촌 남동생 안영호와 결혼하여 사돈의 인연을 맺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도산에 대한 존경심은 참으로 컸다. 1941년 1월16일 대한부인회 전도회장으로 김자혜는 한국 어린이를 위해서 국 한그릇 모금운동으로 10센트나 25센트를 모금했다.

성명 : 김자혜
훈격(연도) : 건국포장(2014)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미상
생존기간 : 1884. 9.22 ~ 1961. 11.22

191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부인회 대표, 1923년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재무, 오크랜드 대한여자애국단 지부 단장을 역임했다. 1929년 부인저금회 회장 및 오크랜드지방회 재정부위원, 1931년 중가주공동회 오크랜드지방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1945년까지 오크랜드지방회 대의원, 국민회 오크랜드 대표등으로 활동하며 여러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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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지도자 김자혜와 남편 김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