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배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으로 독립기금을 모금한 김윤배

김윤배김윤배는 다시 조직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1934년 4월 선출되었다. 미국에 온 연도와 생년월일 사망연월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로지 대한인국민회를 통해서 독립운동을 했다. 1920년이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내는 일에 열심이었다. 백범 김구는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에게 임시정부의 곤란한 사정을 설명하고 재정지원을 요청했을 때 하와이에서는 김윤배가 정성을 모아 거둔 돈을 보내주었다고 백범일지에 쓰고 있다.

1921년 8월2일 하와이에서 이승만의 동지회 측과 박용만 측의 독립단의 투쟁으로 부상자와 검거자가 발생 했을 때 그는 격분했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민족의 영예와 역사를 빛내기 위해서 우리가 광복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승만은 무엇을 하기 위하여 각 단체와 분규를 만드는가. 개인을 떠나 통일을 해야하는데 반대당을 조직하고 폭행까지 일삼 았으니 참으로 비참한 일을 보고 있다.”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6개월만에 사임했다.

성명 : 김윤배
훈격(연도) : 건국포장(1997)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미상
생존기간 : 미상

대한독립단, 대한인국민회 등 미주지역 한인단체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김윤배는 1920년대 후반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임시정부가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 섰다. 당시 임시정부는 본국 뿐만 아니라 만주와의 연락이 모두 끊겨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지자 주석인 김구가 독립자금 지원을 바란다는 편지를 미주와 하와이에 발송한 것이었다.

그는 1934년 6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선임되어 분열된 한인사회의 결속과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힘썼다. 같은 해 8월 임시정부 재무부 주미제5행서 위원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미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에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는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