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상

대한인국민회 통해서 독립기금 낸 강영상

강영상강명화의 넷째 아들 강영상은 1905년 5월29일, 18살에 하와이에 도착했다. 다시 1905년 가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맏형 강영대 그리고 동생 영각과 남가주를 오가며 살았다. 그는 영문 형과 함께 오하이오지역으로 옮겨갔고,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발기회원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1920년대 이후 형제들과 시카고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사업의 길을 걸어갔다. 강영상은 일류 쿡으로 형들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주방을 책임졌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식당에서 버는 수입을 꼬박꼬박 대한인국민회를 통해서 독립기금을 계속해서 냈다. 단체의 책임을 맡기 보다는 독립금을 20여년 송금함으로서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성명 : 강영상(姜永祥, Young Sang Kang)
훈격(연도) : 대통령표창 (2013)
출생지 : 평안남도 증산
운동계열 : 미주방면
생존기간 : 1892 ~ 미상

1919년 대한인국민회 오하이오주 애크론지방회 설립 발기자로 참여, 지방회가 설립되자 실업부원이 되었다. 1916년부터 대한인국민회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1944년까지 지속적으로 국민의무금, 독립의연금, 애국금 등을 지원하였다.

1911년 북미와 하와이는 물론 시베리아지방총회·만주지방총회·수청지방총회가 설립되자, 1912년 중앙총회를 설립하여 국외 한인의 최고기관이자 임시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19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임시정부 후원단체로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 재원의 대부분을 재미한인사회에서 조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강영상M1

1924년 로렌스 캣지에서 카프테리아를 소유한 강영소(오른쪽)와 부인, 그리고 동생 강영상이 식당 뒤에서 잠시 휴식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