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문

형님따라 시카고 정착한 강영문, 흥사단에 열심

강영문강영문은 1888년 2월19일 평안남도 증산군에서 강명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와 형과 동생들이 하와이 노동 이민길에 오른 후 고향에서 어머니 송씨, 그리고 여동생 봉강과 함께 살았다. 미국에 가서 살던 아버지가 다시 고향을 찾았고, 1914년 3월29일 혼자 공부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했다. 9년만에 다시 형과 동생을 미국에서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을 알게 되었다. 강영문은 이후 강씨네 5형제 가운데 시카고에 가장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고 하워드식당을 경영했다. 그는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을 가졌다. 계획과 조직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로 여러 한인단체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시카고한인교회에서도 그는형 강영소에 이어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강영문은 1946년 로스앤젤리스로 이주했다. 흥사단 미주위원부 서무원으로 새로운 고장에서 흥사단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흥사단에 입단한 것은 1938년, 단우번호 는 299번이다. 1944년에는 흥사단과 시카고지회 제6반 반원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44년 10월28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개편에 때는 홍언과 함께 임원으로 선출되어 의장인 한시대를 도왔다. 그리고 1947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부회장을 맡았다. 1961년에는 흥사단 한시대와 함께 이사부장이 되었고 1962년에는 이사부장에 단독으로 뽑혔다. 평생 독신으로 살던 강영문은 남편과 사별한 박영복과 로스앤젤리스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부인 박영복은 대한여자애국단에 가입했고, 많은 여성단체에서 독립운동을 나섰다. 독립선언 33명중의 한분인 박희도의 여동생이다. 대한여자애국단의 나성지부장을 1951년에 맡았다. 강영문은 1965년 나성에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부인 박영복과 함께 로즈데일묘지에 잠들어 있다.

성명 : 강영문(姜永文, Young Moon Kang)
훈격(연도) : 애족장 (2012)
운동계열 : 미주방면
출생지 : 평안남도 증산
생존기간 : 1888. 2. 19 ~ 1968.4.11

대한인국민회에서 1919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지방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1월 16일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론에서 대한인국민회 애크론지방회를 발기하고 서기로 선임되었다. 1920년 2월 캘리포니아주 월로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과 김종림 등이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자 이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했다. 한인 최초의 비행학교인 비행사양성소는 1920년 5월 비행기 2대를 사들여 미국인 기술자 1명, 한인 비행사 6인으로 교수진 을 구성하였으며, 재학생은 19명이었다. 학교 유지 운영에 소요되는 재정은 교포들의 특별의연금과 봉사로 유지되었으나, 설립 후 1년 만에 재정 악화로 폐교되었다. 1923년 2월 남가주 태프트지방회를 설립하고 서기 겸 재무로 활동하다가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주하여 1945년까지 시카고지방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30년 재무겸 실업, 1931년 실업 겸 구제, 1931년 부회장, 1936년 대표원, 1937년 집행위원장, 1941년 대표원, 1942년 재무, 1943~44년 집행위원장, 1945년 대표원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38년 1월 흥사단에 입단하는 한편, 1939년 10월 중국피난민후원회가 설립되자, 변준호의 부탁을 받고 시카고에서 후원회를 조직했다. 중국피난민후원회는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리스 등지에서 조직되어 일화배척, 군수품 일본수출 반대, 선전책자 발행, 강연회, 모금 및 시위 등을 전개했다. 이 단체는 1941년 2월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1943년 1월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로 개편했다. 1944년 9월 조선민족혁명당 북미총지부 통상회가 개최되자, 이 통상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또한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강영문M1

1930년대 후반 시카고에서 3.1절 기념식을 마친 후 흥사단 단우와 한인감리교회 교인들. 두번째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강영문. 그 앞이 부인 박(강)영복.

강영문M2

로즈데일에 잠들어 있는 강영문과 부인 박영복 묘비.